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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악보가 안 외워지는 학생, 정말 암보를 못하는 걸까?

피아노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암보 때문에 불안해하는 학생들이 있다.

“선생님, 저는 악보가 잘 안 외워져요.”

“무대에서 갑자기 생각이 안 날까 봐 무서워요.”

그런데 요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보면 단순히 악보를 잘 외우고 못 외우는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어떤 학생은 곡을 여러 번 연습했는데도 악보를 덮으면 멜로디를 흥얼거리지 못한다. 손은 곡을 따라가는데 머릿속에는 그 음악이 선명하게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암보를 해야 한다는 말만 들어도 불안해진다.

전공자도 악보 암보가 어려울 때가 있다

먼저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은 전공자라고 해서 모두 암보를 쉽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 역시 악보를 외우는 것이 아주 편한 편은 아니었다. 같은 곡을 몇 달씩 연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손에 익어서 외워지기는 한다. 하지만 이렇게 손에 익은 것만 믿고 연주하다 보면 무대에서 갑자기 다음 음이 생각나지 않는 순간이 생길 수 있다.

분명 연습할 때는 잘 쳤는데 무대에 올라가니 어느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이다.

그럴 때 흔히 “악보를 잊어버렸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실 악보 전체를 잊어버린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손의 기억이 잠시 끊겼는데 그것을 대신 이어줄 다른 기억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손이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불안할 수 있다

가장 흔한 암보는 반복해서 연습하다가 손이 기억하는 방식이다.

같은 곡을 계속 치다 보면 손가락의 움직임과 건반의 위치가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전공자들은 한 곡을 몇 달씩 연습하기도 하니 원하지 않아도 손에 곡이 들어간다.

나도 그렇게 외운 곡이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손의 기억에만 의존했을 때다.

연주 중간에 아주 작은 실수가 생기거나 순간적으로 집중이 흔들리면 다음 음으로 넘어가는 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암보를 할 때는 손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멜로디를 흥얼거릴 수 있는지도 한번 확인해보자

요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예전보다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이것이다.

“이 곡 멜로디 한번 불러볼래?”

그런데 학생이 잘 못 부르는 경우가 있다.

피아노로는 계속 연주했는데 막상 악보를 덮고 멜로디를 흥얼거리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이런 학생에게 암보를 더 많이 시킨다고 해서 무조건 해결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내가 지금 치고 있는 곡이 어떤 소리로 흘러가는지 알고 있는지부터 확인해봐야 한다.

음 하나하나의 위치만 기억하고 있는 것과 음악의 흐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암보를 할 때 손가락이 무엇을 하는지만큼이나 내가 지금 어떤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화음이나 음악의 느낌으로 기억하는 학생도 있다

어떤 학생들은 손의 움직임보다 화음 진행이나 음악의 느낌을 통해 곡을 기억하기도 한다.

“여기는 이런 화음으로 가고 있구나.”

“이 부분에서는 음악이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이런 식으로 곡을 이해하면서 외우는 것이다.

이렇게 외운 경우에는 중간에 손의 기억이 잠깐 흔들리더라도 화음이나 음악의 흐름을 생각하면서 다시 이어갈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특히 곡의 형식이 크거나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작품에서는 이런 기억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악보를 외울 때 음만 하나씩 외우려고 하기보다 반복되는 부분이나 화음의 흐름도 같이 보라고 한다.

손도 어렵고 화음도 어렵다면 나는 이렇게 외웠다

그렇다면 손의 기억도 잘 안 되고 화음이나 구조를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 학생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이런 고민이 있어서 예전에 효과적인 암보 방법에 관한 책을 찾아본 적이 있다.

그때 도움이 됐던 방법이 곡을 아주 작게 나누어 외우는 것이었다.

어릴 때 전화번호를 외우던 것과 비슷하다. 긴 번호를 한꺼번에 외우려고 하기보다 자꾸 누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된다.

악보도 비슷하다.

한 마디를 정해서 반복해서 연주한다. 자연스럽게 외워지면 그다음 마디를 익히고, 다시 두 마디를 연결한다.

처음에는 한 마디로 시작하지만 익숙해지면 4마디, 8마디처럼 점점 길게 연결할 수 있다.

처음에는 오히려 느려 보인다.

그런데 전체 곡을 처음부터 계속 반복하면서 “언젠가 외워지겠지” 하는 것보다 내가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쌓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더 도움이 됐다.

바흐를 외울 때는 중간부터 시작해보기도 했다

특히 바흐 곡을 외울 때는 이 방법이 나에게 꽤 도움이 됐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외우기보다 중간 부분부터 한 마디씩 익혀본 적이 있다.

곡을 처음부터 연주하다가 중간에서 기억이 끊기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방식만 반복하면, 정작 중간 이후의 부분은 생각보다 불안하게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간부터 따로 외워두면 어느 위치에서 시작해도 연주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래서 암보가 불안한 학생에게는 가끔 이런 식으로 물어본다.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고 여기서부터 한번 해볼래?”

그때 바로 연주하지 못한다면 그 부분의 암보가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암보는 곡을 다 배운 다음에 따로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악보를 처음 배울 때부터 암보를 같이 생각하는 편이다.

곡을 다 익힌 다음 마지막에 “이제 외워야지”라고 생각하면 이미 손에 익은 방식만 반복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악보를 처음 볼 때부터 음의 흐름을 보고, 반복되는 패턴을 찾고, 화음이나 음악의 느낌을 생각하고, 손의 움직임도 함께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따로 암보를 시작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기억이 같이 만들어진다.

물론 학생마다 잘되는 방식은 다르다.

어떤 학생은 손으로 외우는 것이 빠르고, 어떤 학생은 소리를 들으면서 외우는 것이 편하다. 어떤 학생은 화음이나 구조를 이해해야 기억이 잘되기도 한다.

그래서 암보가 어렵다고 해서 바로 “나는 암보를 못하는 사람인가 봐”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악보를 외우는 것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요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암보를 이야기할 때 나는 예전보다 먼저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이 학생은 지금 곡의 멜로디를 알고 있는가.

손가락이 어디로 움직이는지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중간에서 시작해도 연주할 수 있는가.

화음이나 음악의 흐름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연주하는 음악을 머릿속으로 떠올릴 수 있는가.

암보는 단순히 악보를 머릿속에 집어넣는 일이 아닌 것 같다.

손의 움직임도 기억해야 하고, 소리도 기억해야 하고, 악보의 모양과 음악의 흐름도 함께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암보가 어려운 학생을 만나면 무조건 더 많이 외우라고 하기보다 지금 이 학생은 무엇을 기억하면서 연주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보게 된다.

어쩌면 악보가 안 외워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곡을 기억해온 방법이 한 가지뿐이었던 것일 수도 있으니까.

ensoul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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