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트릴이 어려운 이유, 빠른 손가락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트릴은 나에게 피아노를 배우면서 꽤 오랫동안 어려웠던 테크닉이었다. 어릴 때부터 트릴이 들어간 곡을 좋아하지 않았고, 특히 긴 트릴이 나오는 곡은 피하고 싶었다. 한두 마디 정도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길게 이어지는 트릴을 만나면 손부터 긴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선생님이나 친구들, 학생들 중에서도 트릴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피할 수 없는 곡을 만나게 됐다.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습하면서였다. 긴 트릴이 나오는데 한 손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양손으로 동시에 해야 하는 부분까지 있었다. ‘왜 하필 이 곡을 골랐을까.’ ‘곡을 바꿔야 하나?’ 연습하면서 이런 생각을 꽤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보다 트릴을 잘하는 친구들의 연주를 유심히 보게 됐다.
트릴을 잘하는 사람은 손을 많이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당연히 손가락이 빠른 사람이 트릴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조금 달랐다. 예를 들어 미-파-미-파를 반복한다고 해보자. 나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뿐 아니라 손 전체를 앞뒤로 꽤 많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트릴을 잘하는 사람들은 손의 움직임이 훨씬 작았다. 필요한 만큼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나서야 내가 트릴을 할 때 불필요한 움직임을 많이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트릴은 손가락을 빨리 움직이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움직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가 속도에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
손가락 모양이 무너지면 빠르게 칠수록 차이가 난다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손가락 모양이었다. 손가락이 너무 펴져 있거나 반대로 무너지면 천천히 칠 때는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속도를 올리면 차이가 확실하게 나타난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천천히 걸을 때는 그 차이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빨리 걸으라고 하면 갑자기 걸음이 어색해지는 것처럼, 피아노도 느리게 칠 때는 괜찮아 보이던 손 모양이 빠르게 연주할 때 문제가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트릴을 연습할 때는 무조건 손가락을 빨리 움직이는 것보다 지금 내 손이 어떤 모양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먼저 볼 필요가 있다.
힘을 계속 주는 것보다 쓰고 풀어주는 것이 중요했다
트릴을 연습하면서 또 하나 어려웠던 것이 힘 조절이었다. 처음에는 빠르게 치려고 하다 보니 손에 힘을 계속 주게 된다. 그런데 힘을 계속 주고 있으면 오히려 움직임이 둔해진다.
나는 이것을 공을 한 번 튕기는 것에 비유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공을 바닥에 세게 한 번 튕기면 다시 올라온다. 계속 손으로 밀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힘을 주고 그다음에는 그 움직임을 이용하는 것이다.
피아노도 비슷하다. 필요한 순간에는 힘을 써야 하지만, 그 힘을 계속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
트릴은 빠르게 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트릴을 연습하면서 조금씩 알게 된 것이 있다. 트릴은 단순히 손가락을 빨리 굴리는 기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강하게 시작했다면 그다음에는 소리를 풀어줄 수도 있고, 음악의 흐름에 따라 트릴의 성격도 달라진다.
노래하듯 이어지는 부분에서 트릴이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세고 화려하게 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트릴 때문에 음악의 흐름이 깨질 수도 있다. 그래서 트릴을 연습할 때는 손가락의 속도만 생각하기보다 이 트릴이 음악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같이 생각해야 한다.
내가 어려워했던 경험이 학생을 설명할 때 도움이 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트릴 때문에 오래 고민했던 시간이 학생을 가르칠 때도 도움이 됐다. 예전에는 트릴을 못하면 그냥 손가락이 느린 줄 알았다. 그런데 직접 연습하면서 손을 불필요하게 많이 움직이고 있는지, 손가락 모양이 무너지고 있는지, 힘을 계속 주고 있는지를 하나씩 보게 됐다.
그러다 보니 학생이 트릴을 어려워할 때도 “더 빨리 해봐”라고만 말하지 않게 됐다. 학생의 손을 보면서 어디에서 움직임이 커지는지, 어떤 손가락에서 힘이 들어가는지, 왜 빠르게 할수록 더 불안해지는지를 같이 찾아보게 됐다.
내가 직접 어려워해봤기 때문에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있었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내가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나중에는 학생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
트릴이 안 된다고 손가락만 연습할 필요는 없다
학생을 가르치다 보면 어려운 부분을 만나고 나서야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당장 안 되는 부분을 연습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피아노를 오래 배우다 보면 누구에게나 약한 부분이 생긴다.
어떤 학생은 트릴이 어렵고, 어떤 학생은 스케일이 어렵고, 또 어떤 학생은 아르페지오나 옥타브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입시곡을 준비할 때도 곡에 어려운 부분이 나오고 나서야 당황하기보다, 평소에 내가 어떤 테크닉에서 약한지를 알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나도 트릴을 피하고 싶었던 시간이 꽤 길었다. 그런데 직접 부딪혀보고, 잘하는 사람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내 손을 다시 살펴보면서 조금씩 이유를 알게 됐다. 완벽하게 잘하게 됐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막연하게 무서워하지는 않게 됐다.
그리고 그 경험은 학생을 가르칠 때도 남아 있다. 어떤 테크닉이 잘되지 않을 때 무조건 더 많이, 더 빠르게 연습하라고 하기보다 왜 지금 안 되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 내가 어려움을 해결해보면서 배웠던 것들이 결국 학생에게 설명할 때도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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