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피아노 치며 계이름을 불렀던 습관, 음감에 도움이 됐을까?
어릴 때 나는 피아노를 칠 때마다 계이름을 함께 불렀다.
손이 ‘도-레-도-레’를 치면 입도 자연스럽게 “도-레-도-레”를 따라갔다. 특별히 연습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피아노를 치면 계이름을 부르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것은 곡이 빨라져도 그 습관이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쇼팽 에튀드처럼 빠른 곡을 칠 때도 손을 따라가려고 입으로 계이름을 계속 불렀고, 너무 빨라서 숨이 찰 정도였던 기억도 있다.
그때는 이것이 나중에 어떤 영향을 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원래 피아노 소리를 이렇게 듣는 줄 알았다
전공을 결심하고 처음 만난 선생님은 독일에서 유학한 선생님이었다. 그때 내 나이는 13살 정도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선생님이 아무 건반이나 하나 누르시더니 나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음이지?”
나는 들리는 대로 계이름을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너는 절대음감이구나”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절대음감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냥 선생님이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나 보다 하고 넘어갔다.
사실 나는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그 소리와 함께 계이름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건반을 누르면 피아노가 나에게 “레”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듣는 줄 알았다.
음악을 전공하면서 그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됐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차이를 다시 보게 됐다
지금도 첫 레슨에서 아이들에게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이 건반을 누르면 무슨 음인지 알겠어?”
특히 전공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계이름을 어떻게 듣고 있는지 확인해보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건반을 눌렀을 때 바로 계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
대학 시절에도 상대음감이 강했던 친구가 있었다.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었지만 시창·청음 시간에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사람마다 음을 듣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됐던 것 같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내 동생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가장 신기했던 사람은 동생이었다.
동생 역시 피아노를 전공했다. 그런데 시창·청음 시간에는 나와 달리 꽤 어려워했다.
어느 날 문득 궁금해서 물어봤다.
“너 어릴 때 피아노 연습하면서 계이름 부르고 쳤어?”
동생은 아니라고 했다.
그냥 악보를 보면서 “라라라” 하고 흥얼거리며 쳤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내가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던 방식이 다시 생각났다.
나는 피아노를 치면서 계이름을 계속 불렀고, 동생은 같은 집에서 피아노를 배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두 사람의 음을 듣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물론 이것만 가지고 계이름을 부른 습관 때문에 절대음감이 생겼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나에게는 꽤 재미있는 차이였다.
학생들에게서도 비슷한 모습을 발견했다
그 뒤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계이름을 잘 찾지 못하는 경우를 유심히 보게 됐다.
전공을 준비하는 학생 중에도 건반의 음을 바로 찾지 못하거나, 음을 틀리고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런 학생들에게 어릴 때 피아노를 어떻게 연습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이 똑같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만난 몇몇 학생들은 악보를 보면서 음을 소리 내어 부르기보다는 그냥 흥얼거리면서 피아노를 쳤다고 했다. 반면 나는 어릴 때부터 눈으로 악보를 보고, 손으로 건반을 누르고, 입으로 계이름을 부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반복했다.
그 차이가 음감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이름을 부르는 것이 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계이름을 소리 내어 부르면서 피아노를 치면 적어도 눈으로 본 음과 손으로 누르는 음, 귀로 듣는 소리와 입으로 부르는 이름을 서로 연결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악보에서 ‘미’를 보고 건반을 누르고, 동시에 “미”라고 부르는 것이다. 처음에는 귀찮고 느릴 수도 있지만 이런 연결을 반복하다 보면 악보의 음과 실제 소리를 따로 생각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나는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 이 방법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기서 계이름을 부르는 것이 절대음감을 만들어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음감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고, 내가 경험한 몇 가지 사례만으로 그 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절대음감이 있어서 알게 된 것도 있다
나에게 절대음감이 특별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음악을 전공하면서였다.
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음 이름이 떠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학생들을 가르치고 대학에서 친구들과 공부하면서 사람마다 음을 듣고 기억하는 방식이 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지금은 첫 레슨에서 아이가 계이름을 바로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르면 가르치면 되고, 익숙하지 않다면 반복해서 경험하게 하면 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아이가 피아노 소리를 그냥 손으로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음을 듣고 있고 어떤 음을 연주하고 있는지 연결해서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릴 때의 작은 습관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돌이켜보면 나는 특별한 음감 훈련을 받은 기억이 없다.
그저 피아노를 치면서 계이름을 불렀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것이 연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어릴 때의 작은 습관 하나가 다시 보일 때가 있다.
그 습관 하나 때문에 내가 절대음감을 갖게 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피아노를 치면서 눈으로 악보를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입으로 계이름을 부르던 경험이 나에게 여러 가지 감각을 연결해서 사용하는 습관을 만들어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어린 학생을 가르칠 때도 가끔 계이름을 불러보게 한다.
대단한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라기보다, 지금 치고 있는 음을 귀로 듣고 이름까지 함께 연결해보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에게는 너무 당연했던 그 습관이, 지금까지 피아노를 배우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